권희문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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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22호 (1986년 09월 08일) | |
종목 |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22호 (1986년 09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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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
주소 | 전북 장수군 산서면 오메길 9 (오산리) |
좌표 | 틀:좌표/styles.css 문서에 내용이 없습니다.북위 35° 35′ 17.6″ 동경 127° 23′ 10.5″ / 북위 35.588222° 동경 127.386250° |
권희문가옥은 현 소유주의 10대조가 광해군의 사화를 피해 일가와 함께 현 지역에 정착하면서 건립된 조선후기 상류가옥이다. 1986년 09월 08일 전라북도 민속 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다.개
건물[편집]
장수 팔경 중 하나인 영대산이 뒤에 위치해 있고 7대째 거주중이다. 가옥은 안채, 사랑채, 아래채, 문간채, 바깥채, 서쪽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후기 상류 가옥의 근대화 과정을 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농가로 바뀌어 집 대부분을 농사와 관련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안채[편집]
건립시기는 상량문의 내용을 통해 고종 23년(1866)으로 이다.
상지삼년계축이월이십일묘시립주사시상량
上之三年癸丑二月二十日卯時立柱巳時上樑
3칸으로 대청, 작은방, 찬방, 큰방, 부엌이 있다. 안채 전면 기둥은 둥근기둥이다. 특이한 점은 일반적으로 옛 가옥이 사랑채 중심인 반면 안채가 중심이다. 또한 찬방 전면으로 큰방과 부엌이 ㄱ자형 평면인데, 전라북도 지방 상류 가옥에서는 희귀하다. 현재 대청 끝 1칸을 신위를 모시는 사당으로 사용 중이다. 과거 집 북서쪽에 별도의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부엌 자리에는 방을 들이고, 작은방을 입식 부엌으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사랑채[편집]
건립시기는 상량문을 통해 영조 49년(1773)으로 추정하다. 1875년에 증수했다는 내용은 안채가 세워진 뒤 다른 곳에서 옮겨온 이건의 해이다. 상량문의 필체가 모두 동일한 부분을 통해 1875년 다시 제작했으며 전체적인 수리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숭정기원후삼계사삼월초십일묘시립주미시상량을해오월일중수
崇禎紀元後三癸巳三月初十日卯時立柱未時上樑乙亥五月日重修
4칸으로 대청, 윗방, 사랑방이 있다. ㅡ자형 팔작집으로 60cm 높이의 잡석 기단 위에 세웠으며 마루 끝에 계자 난간을 둘렀다. 2칸이 대청이고 방마다 툇마루로 이어져있다. 방 북쪽을 막아 골방, 벽장, 서고 등 주거공간으로 사용한다.
아래채[편집]
축사로 사용 중이며 창고의 역할을 한다. 옆에는 여물청이 있다.
문간채[편집]
본래 사랑채 화단 앞 서문을 대문으로 사용했으나, 좋지 못한 대문의 위치와 크기로 1973년 문간채를 새로 지었다. 현재는 창고로 개조하여 사용중이다.
바깥채[편집]
사랑채 동편에 외양간, 창고, 목욕탕을 벽돌로 지었다.
참고문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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