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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근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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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kage.lua 80번째 줄에서 Lua 오류: module 'Module:Namespace detect/data' not found. 유상근(?~1945년 8월 14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며 한인애국단에 단원이다. 일본 고위관료들을 암살하려다 체포되어 광복을 하루앞두고 여순감옥에서 순국하였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서훈되었다.

생애[편집]

유상근은 강원도 통천군 순잠면 오유리에서 태어난것으로 알려졌지만 출생년도는 알수없다 그가 자필로 작성한 이력서에 따르면 그의 부친은 유춘기(柳春基)이며 어머니는 김성녀(金性女)였다 이력서에 따르면 그는 강원도 통천에서 9살 때까지 한학을 배우고 10살에 통천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해 4년간 공부하다가 집안사정으로 북간도로 이주했다. 그러나3개월만에 봉밀구 필사촌으로 이사하여 1년간 거주했고 부친을 도와 농사를 지었다. 다시 용정촌으로 이주하여 1년동안 머물며 동흥중학교에서 학업을 수행했다고 한다.그러나재학중 민족의식을 고취하면서도 자신의 뜻을 펼칠수 없음을한탄해 했고 잠시 이모댁에 머물던 유상근은 약간에 여비를 얻어 상하이로 이주한다. 상하이에 도착한 유상근은 한국인을 소개받기 위해 인성학교를 방문하고 그과정에서 김구를만나게 된다 유상근은 9개월간 버스회사에서 일하며 월급에일부를 김구에게 전달한다 이후 홍콩과 광동 등지를 돌며 인삼장사로 셍계를 이어갔고 김구의 부름을 받고 상하이로 돌아간다. 유상근은 대한교민단 의경대에 가입하였다. 그러다 김구에 노종과 논의를 거쳐 거사를위해 사진촬영을 하고 한인애국단에 가입한뒤 입단선서문을 쓰고 세장의 사진을 촬영하였다 김구는 유상근에게 다롄으로 가서 최흥식을 도울것을 지시했고 유상근은 4월25일 윤봉길훙커우 공원 사건때 사용한것과 같은 수통형폭탄을 가지고 다롄으로 향했다. 그는 일본 관동군사령관 혼조시게루와 남만철도 총재 우사다고사이, 관동청장관 야마오카를 처단할 계획을 세웠고유상근과 최흥식은 국제연맹 조사단이 1932년 5월26일 오후7시 40분에 도착한다는 사실을 신문을 통해 알게되었다. 그는 조사단 일행이 다롄을 떠나 다음 행선지로 출발하는 5월30일 오전9시 30분에 거사를 벌이기로 했다. 또한 일본경찰에게 절대 붙잡히지 않기 위해 권총으로 자살하기로했다. 그러나 이계획은 최흥식이 김구에게 발송한 전보가 일본 총영사관에게 발각되는 바람에 거사를 이틀남기고 유상근은 5월24일에 아옥요에서 체포되었다. 유상근은 다롄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3년동안 옥고를 치르다 1945년8월14일 여순감옥에서 광복을 하루앞두고 옥사했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서훈받았고 국립서울현충원에 그를 기리는 위패를 세웠다

사후[편집]

1968년 대한민국 정부는 건국훈장 독립장을 서훈하였다.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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