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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환 (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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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환
韓志煥
작가 정보
출생 1984년 10월 28일(1984-10-28) (39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
직업 시민사회운동가, 인권운동가, 남성운동가, 평론가
국적 대한민국
학력 숭실대학교 대학원
활동기간 2001년 ~ 현재
웹사이트 지환이의 서재:남성운동가 한지환 블로그

한지환(韓志煥, 1984년 10월 28일 - )은 대한민국의 시민운동가, 인권 운동가이자 남성주의 운동가이며, 평론가, 젠더 연구가이다. 한국남성학연구회의 회원이며 2000년대 초, 남녀공동 병역의무 운동을 추진하였다.[1] 2000년대 초부터 시사 평론가와 인터넷 기고가로 활동하였고 남성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남녀공동 병역의무 추진위원회>라는 다음 까페 운영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2] 1999년 10월 군 가산점 폐지 여론이 나오자 정채기, 성재기 등과 함께 군 가산점 폐지를 반대하였다. 이후 인터넷 논객으로도 활동하다 2001년 10월 군 가산점 폐지 이후 여성에게도 병역 의무를 이행할 것을 촉구하였고, 2007년부터는 여성 할당제가 남녀 역차별을 조장하는 것이라며 반대하였다. 2004년에는 호주제 폐지 운동에 동참하였으며 2005년 숭실대학교 법과대학을 휴학하였고 뒤에 전과하여 동 대학 인문대학 사학과를 졸업했다.

한국남성학연구회의 회원이고, 2000년대 초반부터 칼럼, 논객 활동을 하였으며 2007년에는 정채기, 이재택 등과 공저 《페미니즘에 대한 남성학과 남성운동》 등을 저술하였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생애[편집]

초기 활동[편집]

출생과 초기 활동[편집]

한지환은 10월 28일 서울 양천구 목동 출신으로 장안초등학교를 거쳐 성동초등학교로 전학, 성동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광양중학교로 진학했다. 2000년 동서문학 청소년 문학상 수필ㆍ독서평론 부문에 입선하였다.[3] 2008년 잡지 대학 내일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스스로 어렸을 적 자신이 소심하고 우유부단했으며 겁이 많은 아이였다고 털어놨다. 이런 성격 탓에 종종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다.[4]

한 번은 초등학교 때 선생님과 부모님께 수예부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가 혼이 난 적이 있었어요. 남자가 뭐 수예부냐고. 수예부가 뭐하는 건지나 알고 말하는 거냐고. 설마 제가 수예부가 뭔지도 모르면서 하고 싶다고 말했겠습니까. 그 당시 저는 정말 수예를 배워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선생님과 부모님께서는 허락해주지 않으셨고 저는 결국 임의대로 다른 부서에 배치됐죠.[4]
어려서부터 겁쟁이였고, 우유부단했어요. 중학생일 때 수예부에 들어가려 했는데, ‘어디 남자가 할 일이냐’며 다른 곳으로 쫓겨났어요. 90년대 말 한창 왕따가 사회문제화 됐을 때는 사실 여학생들에게 더 많이 맞았어요.[2]

2000년 3월 광남고등학교로 진학하였다.

청소년기[편집]

학창 시절 그는 남성성에 대해 회의하게 되었다. 학창 시절 그는 그의 표현에 의하면 '어려서부터 겁쟁이였고, 우유부단했어요. 중학생일 때 수예부에 들어가려 했는데, ‘어디 남자가 할 일이냐’며 다른 곳으로 쫓겨났어요. 90년대 말 한창 왕따가 사회문제화 됐을 때는 사실 여학생들에게 더 많이 맞았다[2]'며, 그때마다 주변에서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보내기 보다는 조소의 대상으로 자기를 바라볼 때, 주어진 남성성에 대해 문제의식을 몸소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여성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그 속에서 어렴풋이 한계를 느꼈다.[2] 그에 의하면 '차츰 성장하면서 그는 어렸을 적 이러한 경험들의 이면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발견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남성상, 여성상 속에 사람들을 가두어 버리고, 그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사람들에게는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그는 젠더(gender, 사회적 성)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4]'한다.

2004년 광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숭실대학교 법과대학으로 진학했다. 대학 재학 중 인터넷 논객으로 활동하며 중앙일보 디국 토론방의 연소 논객으로도 활동하였고, 칼럼니스트, 평론가로도 활동하며 남성 운동에도 참여하였으며, 한국남성학연구회 회원이자 남녀공동 병역의무 추진위원회 운영자이기도 했다.

남성 운동 참여[편집]

남녀 공동 병역 운동[편집]

2000년대 초반 그는 남녀 공동 병역의무 운동에 참여하였다. 2002년 고3때부터 <남녀공동 병역의무 추진위원회>라는 다음 까페 운영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2] 남성 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로 그는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과 고정관념이 힘들어서 여성운동을 시작했듯이, 저도 마찬가지예요"라 한다.[2] 2003년 시민단체 남녀공동 병역의무 추진위원회의 대표로 활동했다.

2009년의 한 인터뷰에서 그는 남자들만 군대에 보내는 것은 남녀차별적인 발상이며 가부장제의 산물이라고 비판했다.[5] 한 번은 그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썼다. 분명 똑같은 글을 올렸는데 페미니스트들의 커뮤니티에서는 ‘이 사람 분명히 마초다. 남성운동이나 하라’는 식의 반응이 돌아왔다. 반대로 남성운동가 커뮤니티에서는 ‘남성 페미니스트다. 그런 소리는 페미니스트에게나 하라’는 식의 반응이 나왔다. 그는 자신이 페미니즘과 남성주의자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있다고 한다.[4]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남녀공동 병역의무 추진위원회에서 활동했어요. 하지만 제가 호주제 폐지를 옹호하면서 회원들과 마찰을 빚게 됐고 결국 탈퇴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남성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페미니즘과 만나게 됐죠. 하지만 여성들의 인식 역시 변화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다보니 페미니즘과 부딪히게 되고 그러다가 그만 사이에 끼어 버린 거죠.[4]

결국 호주제 폐지를 옹호하면서 회원들과 마찰을 빚게 됐고 결국 2004년 남녀공동 병역의무 추진위원회를 탈퇴하게 됐다.[4] 그 후 ‘친여권주의적 남성운동’인 여성에 대한 남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화이트 리본 달기' 운동을 통해 정채기 교수를 만나면서 남성학을 배웠다. 그때부터 ‘마초이즘’과 ‘여성학’ 양쪽 모두에 거리를 두며 남성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4]

호주제 폐지에 참여[편집]

2001년 군 가산점 폐지 이후 정채기, 성재기, 김재경 등과 함께 군 가산점을 지지하는 입장에 서서, 군 가산점을 반대하는 여성계와 논쟁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부, 여성계와의 전면전, 투쟁을 선언한 성재기 등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2004년 호주제 폐지 때 다른 한국남성학회 회원들과 함께 이를 지지하였다.[2] 성재기 등 일부는 호주제 유지를 주장했지만 한지환과 정채기 등은 호주제 폐지를 지지하였다.

2004년 호주제 폐지 열풍이 일었을 때, 남성학회 회원들도 힘을 보탰죠. 그때 여성계 논리가 호주제는 남성들에게도 중압감을 갖게 하는 것이므로, 호주제가 폐지되면 남성들도 생계부양에서 해방될 것이라며 남성들을 설득했어요. 하지만, 지금 어느 누가 그런 얘기하나요, 실제 어떤 남성학자는 ‘첨병으로 이용당했다’라고 말씀하셔요.[2]

2007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호주제 폐지에도 동참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 여성계에 이용당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대학 재학[편집]

그는 학교 재학 중에도 꾸준히 여성 병역 의무론 또는 남녀 공동 병역론을 주장했다. 그는 '분단 현실 때문에 징병제(徵兵制)가 존재한다면 무엇 때문에 남성만 그 의무를 져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남성은 여성을 지배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가부장제(家父長制)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5] '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가부장제에 반대, 비판하였으며, 동시에 가부장제를 비판하면서도 남성들에게 책임감을 강요하며 가부장제 논리에 편승하는 여성운동가, 인터넷 여성 네티즌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가부장제를 비판하면서 가부장제의 혜택을 보려는 일부 여성들의 무책임함을 지적하였다.

2005년 숭실대학교 법대를 휴학하고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다가 2007년 4월소집 해제되었다. 소집 해제 직후 바로 영화배우 이모 부부의 폭행 사건이 집중 보도되면서, 남편인 배우 이모의 가해사실만이 강조되자 과거의 여성계가 가정폭력 사건 중 여성만을 옹호한 것을 지적, 비판하였다. 이후 다시 페미니즘 비판과 남성주의 운동을 재개, 2007년 7월 정채기 등과 함께 페미니즘에 대한 남성학과 남성운동이라는 젠더리즘(Genderism)의 공동 편집자의 한 사람으로 출간하였다. 숭실대학교 인문대 사학과로 졸업하고 숭실대 대학원 사학과로 진학하였다.

그는 남녀공동병역의무추진위원회의 운영자, 중앙일보 디지털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여성문제와 관련된 사건들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펼쳐왔다.[6]

논객 활동[편집]

여성 피해자론 반박[편집]

그는 2000년대 초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정채기, 성재기, 김재경 등과 함께 여성이 일방적 약자, 여성이 일방적인 피해자라는 주장을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2004년부터는 중앙일보의 독자토론방인 조인스 디지털 국회방오마이뉴스 등에서 2007년 4월부터는 문화미래 이프지와 오마이뉴스 등지에서 여성이 일방적 약자, 여성이 일방적인 피해자라는 견해를 반박하였다. 그에 의하면 여성이 일방적 피해자는 아니며 여성도 권력을 갖고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고 보았다. 또한 여성이 남성을 성추행할 수도 있다는 점도 지적하였다.

군 가산점 폐지로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출발선에서 출발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성 의무 할당제를 시행해서 여성들에게 부당한 특혜, 남성 합격자가 될 자리 조차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부여한 점과 간호사 등 특정 직종 채용시 의도적인 남성 채용 거부 등을 지적하며 여성이 약자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2006년 이후 그는 성재기 등과 함께 인터넷과 오프라인 등에서 여성 할당제는 남성에게 불이익을 주는 역차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주로 중앙일보 디지털 국회방, 오마이뉴스, 문화미래 이프 뉴스 등의 게시판과 기고자, 관리자 등의 메일 등으로 논쟁을 벌였다.[출처 필요]

그는 자신을 "가부장적 사회질서를 옹호하는 보수적인 안티페미니스트는 아니다"라고 말한다.[6] 호주제 폐지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남성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며 생리휴가제도, 여성할당제, 여성부의 존립 등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게 그의 주장. 남성의 성적 희화화, 남성용 육아시설 부재, 여성들의 남성에 대한 능력지상주의 등을 비판하기도 했다.[6]

여성 이기주의 비판[편집]

그는 한국여성 우월주의자들이 남성은 일방적 가해자, 여성은 일방적 피해자라고 강변한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한국의 (자칭) 페미니트스들이 여성 가해자를 말하면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점도 지적했다.[2]

(한국형) 페미니스트들은 가해자 여성을 이야기하게 되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요. 남성이 생계부양에 대해 책임지는 것에 대해 여성의 책임은 없는 가요?[2]

2007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이를 주장하기도 했다.[2] 그는 새로운 페미니즘은 “가해자 여성과 수혜자 여성에 대해서도 지적하는 개방적, 성찰적 여성주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남성은 여성보다 권력·지위와 능력이 높아야 한다는 ‘남고여저(男高女低) 문화’와 ‘남성생계부양자 모델’ 등을 페미니스트들이 간과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2]

그는 1990년대 이후 나타난 ‘신남성’인 ‘메트로섹슈얼(패션·외모에 민감한 남성)’,‘훈남(보기만 해도 훈훈해지는 남성)’,‘완소남(완전히 소중한 남자)’ 등은 남성의 외모가 세련되고 예뻐지고 있을 뿐, 본질적으로 남성은 돈과 권력, 지위를 갖춰야 한다는 고정관념에는 변함이 없다며 꼬집었다.[2] 따라서, 페미니스트들이 이런 성별고정관념이 깔린 남성성을 비판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2] 그는 '남성이 생계부양에 대해 책임지는 것에 대해 여성의 책임은 없는가?[2]'라며 항변하였다. 그는 남자가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여자가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려 하지 않는 점을 지적했다.

가부장제 비판[편집]

그는 가부장제는 남자들에게도 힘들게 하고, 남자들도 괴롭혀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자라면 이래야 한다.’ 또는 ‘이런 남자가 좋다.’는 식의 우리 사회의 남성에 대한 성별 고정관념과 친구관계나 이성관계, 부부관계에까지 팽배해있는 남고여저(남성이 여성보다 경제 · 사회적으로 더 나아야 한다는 생각)의 문화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자라면 이래야 한다.’는 인식 역시 문제라 했다.[4]

저는 남성과 여성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이를 테면 신체적 차이 외의 기준으로 구별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남성 전업주부는 인정받지 못해요. 즉, 남성이 변화하고자 했을 때 우리사회는 남성의 변화를 용인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선택하는 것은 남성이라서 혹은 여성이라서가 아닌 개인의 가치관과 취향에 따른 선택의 결과일 뿐이에요. 이러한 선택의 결과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고방식은 사라져야 합니다.[4]

그는 또 대학가에 뿌리내려있는 가부장적인 문제로 ‘오빠문화’와 남성에 대한 여성들의 경제적인 의존성을 지적한다. 이른바 ‘여성들의 면책특권’. 그는 “여성들은 양성평등을 바라면서도 이러한 특권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수많은 오빠들인 남성 역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이를 거부하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4] 그는 양성 평등을 말하면서 더치페이 하지 않는 여성들에 대해서 꾸준히 지적하였다.

그는 남성학, 남성에 대한 연구가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100여 군데에서 남성학이 학부전공과정으로 연구되고 있고, 일본에서도 40여 곳에서 교양강좌로 두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아울러 궁극적으로 그는 한국에서도 외국처럼 여성학과 남성학을 통합한 소위 'gender studies'(性科學 )으로 전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2] 그는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서서히 가부장제 문화가 사라지고 남녀 평등한 문화가 조성되리라고 전망하였다.

평론 활동과 남성 운동[편집]

package.lua 80번째 줄에서 Lua 오류: module 'Module:Message box/localize' not found. 2007년 5월부터 다시 그는 인권 운동가, 남성 운동가로 활동하며 페미니즘을 비판하고 여성에게도 의무를 분담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1998년부터 시행된 여성 할당제의 문제점과 군 가산점 폐지 주장을 비판하기도 했다. 군 가산점은 양성 평등에 위배된다며 폐지했으면 여성 할당제 역시 또다른 차별이 아니냐고 지적하였다. 2007년 6월부터는 줄곧 문화미래 이프와 오마이뉴스 등에서 여성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2008년 11월 10일 에는 서울시 한강사업본부는 지하철 7호선 뚝섬유원지역 인근 한강공원에 여성 전용 대화공간인 "한가람 둥지"방을 개설하자 11월 중순, 남성들을 위한 문화시설은 만들지 않느냐고 항의하였다.

2007년 7월 2일 전원책의 팬 카페 전원책정치아카데미에 가입하여 활동했으나, 그는 호주제 폐지와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입장으로 회원들과 갈등하던 끝에 2008년 2월 20일 탈퇴하였다. 이후 독자적으로 문화미래 이프와 오마이뉴스 등에서 페미니스트들과 논쟁하였다. 2009년에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전격 체포되자 "우리나라 독재정치로 돌아가는 건가[7]"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2011년 10월 26일부터 11월 3일에는 군 가산점 문제로 김신명숙과 논쟁하기도 했다. 이때 그는 가산점 이야기가 아니라 병역의 의무를 말하는 것이며, 병역의 의무는 남성들에게만 부과되었다며 남성에게만 병역을 짊어지게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냐며 왜 남성들만 희생해야 하느냐고 항변하였다. 또한 논쟁 중에 그는 1998년 문제의 토론회에서의 김신명숙의 발언을 지적하였다.

2013년 5월 22일 ~ 5월 23일 서경대학교 남성학 특강을 하였다.

2013년 7월 31일 성재기의 투신 직후 그는 "남성연대가 확고한 세력화를 구축하진 못했지만 많은 남성들의 지지를 얻는 데는 성공했다"며 "성 대표가 다소 거친 방법이지만 훌륭하게 남성의 현실을 대변했다"고 평가했다.[8]

저서[편집]

  • 《페미니즘에 대한 남성학과 남성운동》(원미사, 2007), 공저

활동[편집]

그는 여권이 어느 정도 신장되었는데도 여성을 일방적 피해자로 규정하는 일부 페미니즘에 대해 '절름발이 페미니즘'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피해자로서의 여성의 시각에만 머무르고 있는 기존의 ‘절름발이 페미니즘’에 얽매이지 않은 채 전통적인 성별 이원체계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일, 이것은 성학자들과 젠더 연구자들이 꼭 해야 할 일이라 지적했다.[9] 또한 그 동안 비판 받아왔던 남성들과 함께 여성들 역시 전통적인 성별 이원체계 하에서 자신들이 누렸던 혜택에 대해 분명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지난 수십 년 동안 유지되어 온 양성평등 이슈에 대한 여성주의의 독점체제가 한순간에 고쳐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문제를 놓고 남성학계와 여성학계 사이에 보다 많은 대화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 하였다.[9]

여성 병역 추진론[편집]

2000년대 초반 그는 남녀 공동 병역의무 운동에 참여했고, '남녀공동 병역의무 추진위원회'의 운영자로도 활동했다. 2009년의 한 인터뷰에서 그는 남자들만 군대에 보내는 것은 남녀차별적인 발상이며 가부장제의 산물이라고 비판했다. 그에 의하면 '분단 현실 때문에 징병제(徵兵制)가 존재한다면 무엇 때문에 남성만 그 의무를 져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남성은 여성을 지배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가부장제(家父長制)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5]'라는 것이다.

그는 여성에게도 병역 의무를 이행할 것을 요구했고, 페미니스트들과 논쟁하기도 했다. 그가 페미니스트들과 최근 날 선 대립을 빚었던 것은 ‘남녀가 함께 병역의 의무를 져야 한다’는 주장에서였다.[10] 그는 일부 여성이 권리만 행사하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것을 지적했다. 그는“전쟁과 군대는 남자들이 만든 것인데 왜 여자들이 징집되는가” “선천적인 체력 차이를 무시한 감정적 주장 아닌가”라는 반박에 남성운동 쪽에서는 “남성만 병역 의무를 지는 것은 가부장제의 산물이며, 체력에 관계 없이 수행할 수 있는 병역 업무에 여성을 활용할 수 있다”고 다시 반박하였다.[10]

그는 양성평등사회에서 특정한 성(性)만이 병역과 같은 국가적 의무를 부담한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어쩔 수 없이 남성만이 병역의무를 부담해야 한다면, 그들은 별도의 보호를 받아야 할 ‘성차별의 피해자’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봤다.[9] 또한 여자에게 맞는 복무 형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2009년의 한 인터뷰에서 그는 '공익근무나 대체복무의 형태로 수행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더 중요한 점은 당장 개선할 수 없더라도 남성만 복무하는 것이 성차별이라는 것을 공론화하는 것이다.[5]'라 하기도 했다.

군 가산점 폐지론과 여성할당제 문제[편집]

그는 여성 의무 할당제가 시행되는 시점에서 군 가산점을 폐지할 것을 요구한 여성계의 주장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의하면 "여성할당제가 한참 시행 중이었던 1999년 12월 군 가산점 폐지 당시 여성계가 내세운 주장과, 여성할당제를 옹호할 때 여성계가 내세우는 주장 사이에는 심각한 모순이 있다.[11]"고 지적했다.

그는 "군 가산점 폐지 당시 여성계가 내세운 근거 중의 하나가 바로 '고시라는 것은 병역 의무 이행 여부와 상관없이 행정, 사법, 외무 분야에서의 직무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것인데, 군 가산점 제도는 공무원을 직무수행능력대로 뽑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 한마디로 군가산점으로 인해 능력 있는 여성이 불이익을 본다는 것이었다. 일전에 군 가산점 폐지를 놓고 게시판 상에서 토론을 벌인 한 여성 역시 군 가산점 제도를 '호봉 체계처럼 군필을 인정해주는 차원이 아닌, 합격이라는 기회의 평등을 막는 원천적인 차별제도'라고 비판했다.[11]"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군 가산점 폐지 당시 능력있는 여자들이 차별대우받는다는 주장에 대해 여성 의무 할당제 시행으로 실력있는 남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왜 언급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여성 할당제에 대한 여성계의 입장에 이의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11]"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에 의하면 "여성 할당제가 통과되었을 때, 여성계는 왜 군 가산점을 폐지했을 때와 달리 '능력대로' 뽑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병역의무 이행 여부가 공무원 선발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군 가산점 제도를 '합격이라는 기회의 평등을 막는 원천적인 차별제도'라고 규정한 여성계의 논리대로라면, 이 여성할당제 역시 남성인지 여성인지의 여부가 사원 임용과 국무 수행 능력의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취업과 정치참여라는 기회의 평등을 막는 원천적인 차별제도'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11]"라고 지적했다. 그는 병역 복무로 인한 손실에 대하여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를 여성계에 되물었다.

그는 기존의 군필자 가산점제도를 무비판적으로 옹호할 생각은 없다며 다만 '보다 근원적인 성차별이라고 할 수 있는 남성 징병제가 현실적으로 개선될 수 없다면, 매스큘리즘페미니즘을 아우르는 젠더리즘의 시각에서 군필자 가산점 제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할 것입니다. 현재 군필자 가산점제도에 대한 논의가 겉도는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사회구성원들(특히 여성들)이 남성 징병제가 전통적인 성별 이원체계에 바탕을 둔 명백한 ‘성차별’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 하기도 했다.[9] 그는 군 가산점 폐지 때는 여성에게 불이익을 준다 하면서 여성 의무 할당제 때는 남성에게 가해지는 불이익에 침묵하는 것을 비판했다. 결국 군 가산점 폐지 당시 여성계가 내세운 주장과 여성할당제가 통과되었을 당시 여성계가 내세운 주장 사이에는 심각한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12]

여성 할당제 비판[편집]

그는 여성 의무 할당제를 남자들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여성 할당제의 문제점으로 "여성 할당제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의하는 '기회의 평등'을 막는 원천적인 차별제도[12]"라고 지적했다. 2000년대 이후 대한민국에서 여성 할당제가 기업에게도 요구되자 그는 이것이 역차별임을 지적하였다.

그는 "여성 할당제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의하는 '기회의 평등'을 막는 원천적인 차별 제도라는 것이다. 알다시피 기업체에서의 사원 임용은 기업을 위해 기민하고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을 선발하는 과정이다. 또한 국회의원 비례대표는 일반 국정에 결정적으로 참여하는 국민의 대표이며, 그들은 국민의 지지를 받고 국정을 수행해나갈 능력과 경륜을 갖춘 이들이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면 우리는 기업체 내에서의 업무수행과 국회에서의 국정 수행 능력에 관계없이, 남성인지 여성인지의 여부에 따라 혜택을 부여하는 여성할당제의 문제점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12]"고 지적했다. 그는 일부 정당에서 국회의원 자리와 비례대표 자리에도 여성 할당제를 요구하자 여성이라는 이유로 혜택을 부여한다며 비판하였다.

그는 여성 할당제는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여성이 침해당한 기회의 평등을 회복할수 있는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 요소라 할 수 있는 '경쟁'이라는 과정을 뛰어 넘어, 무조건적인 '결과적 평등'을 보장하고 있다[12] 고 지적했다. '이는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두 갱개의 기둥인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 정신에 완전히 위배되는 행위이다[12] 라고 지적했다.

남성 취업 역차별 비판[편집]

그는 여성 의무 할당제가 남성에 대한 역차별행위임을 지적했다. 그에 의하면 "여성 할당제의 문제점은 더 많은 땀과 노력을 기울이지도, 잣니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지도 않은 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경쟁에 따라 주어져야 할 일자리와 의석을 할당받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체 내에서의 일자리와 국회의 비례대표 의석은 남성 구직자와 정치 지망생도 여성 못지않게 간절히 희망하는, 그래서 한 사람으로 하여금 최선을 다해 취업준비와 정치활동 준비에 임하게끔 하는 궁극적인 목표이다.[13]"라고 지적했다.

이어 "능력 있는 남성에게 돌아가야 할 이러한 결실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조건) 할당받도록 하는 여성할당제는 과거의 사회 진출에 대한 성차별 못지 않은 남성에 대한 역차별[13]"이라 비판하였다.

남성 성역할에 대한 비판[편집]

그는 남성에게 제기된 성 역할에 대해서도 비판을 제기했다. 그는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성 역할이 남자들에게도 중압과 좌절감과 심리적 고통을 안겼다고 지적했다. '남자는 강해야 한다'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사고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감정까지 숨겨 가며 좌절과 중압감을 주었다[5] 는 것이다. 그는 ‘남자라면 이래야 한다.’ 또는 ‘이런 남자가 좋다.’는 식의 우리 사회의 남성에 대한 성별 고정관념과 친구관계나 이성관계, 부부관계에까지 팽배해있는 남고여저(남성이 여성보다 경제 · 사회적으로 더 나아야 한다는 생각)의 문화가 문제라고 지적했다.[4] 그에 의하면 '남성들은 전통적으로 사냥과 농사로 경제를 책임지며 전쟁터에서 가족을 보호해야 했다. 이런 고정관념이 21세기까지 이어진 것이다. '남자는 강해야 한다'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사고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감정까지 숨겨 가며 좌절과 중압감을 느껴야 하지 않았는가[5]' 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우리는 전통적인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에 얽매이지 않고, 개개인의 가치관, 개성, 취향 등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남녀 모두 상대에게 모순된 요구, 즉 슈퍼맨 혹은 슈퍼우먼의 모습을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이론에만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남성학은 일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실천적인 학문이 되지 않는 한, 존재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4]

그는 남자는 이래야 한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성 역할을 지정하는 것을 비판, 반대하였다. 그는 "전통적인 성역할관을 탈피해 남녀 구분없이 자유로운 성역할을 맡겨야 한다"며 "남성이 전업주부가 돼도 떳떳할 수 있고 여성도 가장으로서 위엄을 세울 수 있을 때 진정한 양성평등이 이뤄진다"고 주장했다.[8]

남성 약자론[편집]

그는 남성도 약자의 처지에 놓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남자가 약자의 처지에 놓인다 해서 비난하는 것의 문제점도 지적하였다.

여성운동과 남성운동은 모두 기존에 강요됐던 성의 이미지를 거부한다. 여성도 강할 수 있고, 남성도 약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문제는 강한 여성상과 달리 유약하고 섬세한 새로운 남성상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취약하다는 점이다.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시각으로 볼 수밖에 없다. 남성운동을 이야기하는 것이 ‘찌질’해 보이진 않을까 고민하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종의 딜레마다. 남성운동이 좀 더 사회에 정착하고 새로운 남성상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해결될 문제다.[14]

그는 진정한 성 평등을 위한 전제조건의 하나로 "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14]"고 지적했다.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편집]

그는 '남성은 여성을 지배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가부장제 이념의 산물[5] 이라며 비판하였다. 또한 그는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가부장제가 남자들에게 혜택을 주었다, 남자들만을 위한 정책이라는 것을 비판했다. 2007년 9월 한지환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피해를 입어 왔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가부장제의 억압 속에 숨겨진 ‘남성의 피해’와 ‘여성의 수혜’는 외면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15]

그는 "가부장제가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억압을 가해 왔다는 사실을 페미니스트들이 간과하고 있다. 남성은 '남성다움'을 강요받고 능력에 관계 없이 가족을 책임져야만 했다. '남자는 군대를 가야 한다'는 것도 그런 억압 중 하나였다. 반면 여성에게는 일종의 수혜(受惠)였다.[5]"며 가부장제가 남자들에게도 억압과 폭력을 가해왔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여성 특혜 정책 비판[편집]

package.lua 80번째 줄에서 Lua 오류: module 'Module:Message box/localize' not found. 그는 2000년초부터 여성도 병역 의무를 이행할 것을 주장하였고, 군 가산점을 폐지하면서 여성 의무 할당제를 요구하는 여성계의 주장을 이중잣대라고 지적, 비판하였다. 2007년에는 군 가산점 폐지가 능력있는 여성을 차별대우한다면서 여성 의무 할당제가 능력 있는 남성을 차별하는 것을 지적하였다.

2009년 3월 23일에는 서울특별시에서 여행 프로젝트(女幸, 여성이 행복한 도시) 라는 목적으로 여성 전용 주차장을 개설하자 3월 25일 여성 전용 주차장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지적, 항의하였다. 이때 그는 여성을 별도로 배려(혹은 보호)하겠다는 것은 가부장제적인 입장에서 여성을 차별대우하는 것이라 비판하고, 오히려 여성 배려 보다는 여성은 본래 운전에 서툰 존재’라는 잘못된 성별 고정관념을 고착화시키고, 남성 운전자들이 여성 운전자를 얕잡아보거나 그들에게 우월의식을 가지는 풍조를 오히려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남성 전업주부 인정론[편집]

그는 남자 가정주부, 남자 전업주부도 인정해야 한다 하였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남성 전업주부는 인정받지 못해요. 즉, 남성이 변화하고자 했을 때 우리사회는 남성의 변화를 용인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겁니다[4]'라며 '누군가가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선택하는 것은 남성이라서 혹은 여성이라서가 아닌 개인의 가치관과 취향에 따른 선택의 결과일 뿐[4]'이라 지적했다.

그는 남성과 여성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이를 테면 신체적 차이 외의 기준으로 구별하는 것을 거부한다며 이러한 선택의 결과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고방식은 사라져야 한다[4] 라고 역설하였다.

기타[편집]

  • 2000년 동서문학 청소년 문학상 수필ㆍ독서평론 부문 수상

각주[편집]

  1. 이젠 남성학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세계일보 2007.07.13
  2. 2.00 2.01 2.02 2.03 2.04 2.05 2.06 2.07 2.08 2.09 2.10 2.11 2.12 2.13 2.14 2.15 "새로운 페미니즘은 가해자, 수혜자 여성도 비판해야지요." 경기여성웹진 우리 (2007년,11月-통권83호)
  3. 이젠 남성학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세계일보 2007.07.13
  4. 4.00 4.01 4.02 4.03 4.04 4.05 4.06 4.07 4.08 4.09 4.10 4.11 4.12 4.13 4.14 송충현, 〈젠더의 진정한 자유를 꿈꾸다〉, 대학내일 417호
  5. 5.0 5.1 5.2 5.3 5.4 5.5 5.6 5.7 [Why] "남성만 징병하는 건 가부장제 산물 여성도 병역의무 져야 하는 건 당연" 조선일보 2009.07.25
  6. 6.0 6.1 6.2 여성학을 비판하는 시선들 여성신문 2007.07.20
  7. "강만수 대신 쓰려고 미네르바 모셔간 것 아냐" 머니투데이 2009.01.09
  8. 8.0 8.1 남성권익운동, 필요惡 논란만 키웠다 아시아경제 2013.07.31
  9. 9.0 9.1 9.2 9.3 절름발이 페미니즘과 성별 이데올로기 덕성여대신문 2010.01.05
  10. 10.0 10.1 남자들은 모른다고? 여자들이 모르는 것도 많아! 조선일보 2007.07.17
  11. 11.0 11.1 11.2 11.3 권혁래외 공저, 《읽기와 쓰기》 (숭실대학교 출판부, 2009) 255페이지
  12. 12.0 12.1 12.2 12.3 12.4 권혁래외 공저, 《읽기와 쓰기》 (숭실대학교 출판부, 2009) 256페이지
  13. 13.0 13.1 권혁래외 공저, 《읽기와 쓰기》 (숭실대학교 출판부, 2009) 257페이지
  14. 14.0 14.1 "새로운 남성상에 대한 공감대 형성 필요" 고려대학교 학보
  15. 여성주의, 극단적 이기주의? 가천대신문 2007년 09월 17일자

관련 서적[편집]

  • 권혁래, 김미영 외 3명, 《읽기와 쓰기》 (숭실대학교출판부, 2009)
  • 사사키 마사노리 외 3명, 《페미니즘에 대한 남성학과 남성운동》(원미사, 2007)

참고 자료[편집]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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