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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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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kage.lua 80번째 줄에서 Lua 오류: module 'Module:Message box/localize' not found. package.lua 80번째 줄에서 Lua 오류: module 'Module:Message box/localize' not found. 후기신라(676년~935년)란 백제고구려가 멸망하고 신라가 한반도 중남부 일부를 점령한 이후의 신라를 말한다. 통일신라의 대체용어. 남북국 시대 유득공은 북국(발해)과 대비하여 남국이라 부르기도 했다.

명칭[편집]

한국의 역사 전체를 놓고 볼 때 일반적으로 제29대 무열왕 이전을 삼국 시대, 그 이후를 통일신라시대로 구분짓는다. 그러나 발해의 역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기 시작하면서, 통일신라라는 표현에 꾸준히 이의가 제기되고 있다.[1] 발해가 세워진 698년부터를 남북국 시대라고 하며 '통일신라시대'를 역사에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실제 발해한국의 역사로 취급하고, 신라의 삼국통일 또한 온전한 통일로 보기 어렵다는 관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한반도 최초의 통일은 고려시대라는 견해와 맞물린다.[2]최근에는 통일신라와 그를 대체하는 표현인 '후기신라'라는 표현이 혼용되고 있다. 현행 한국사 교과서는 신라와 발해의 존재를 대등하게 인정하는 남북국 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통일신라 용어의 문제점[편집]

일제강점기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였으니 통일 신라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옛 고구려 땅은 더 이상 조선의 역사가 아니라는 논리가 만들어졌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왕조에서도 신라의 승리를 예찬하기는 하였지만 '삼국통일'이라는 용어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우리 역사에서 지금과 같은 '삼국 통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다. 하야시 다이스케는 저서『조선사』에서 삼국의 불완전한 통합을 '신라의 삼국 통일'로 규정했다.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이를 '신라의 반도 통일'이란 이름으로 정의했고, 해방 이후 우리 학계에서도 이 논리를 그대로 수용했다.[3] 일본 학자들이 신라를 예찬하고 '신라의 삼국 통일'이라는 논리를 퍼트린 것은 일제의 전략적 목표와 연관있다. 만주를 한반도의 역사에서 완전히 분리시켜 한국의 역사를 축소시키고 당시 만주지역에 대한 일제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만주지역을 지배하던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한국사의 범주에서 배제하려는 만선사관(滿鮮史觀)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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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통일신라라는 표현을 사용할 경우 결과적으로 '통일되지 않은' 발해 영토를 배제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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