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엽 (조선)
package.lua 80번째 줄에서 Lua 오류: module 'Module:Namespace detect/data' not found. 이대엽(李大燁, 1587년 ~ 1623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자는 문보(文甫). 이범(李範)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우선(李友善)이다. 판의금부사 이이첨의 아들이다.
생애[편집]
1612년(광해군 4) 진사와 증광 문과에 급제하고, 조정의 청현직(淸顯職)을 두루 지냈다. 이는 광해군 정권인 대북(大北)의 거두가 아버지 이이첨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인조정권인 서인(西人) 세력의 평가는 겨우 글자를 알아보는 정도로서 전후의 과거 급제가 모두 남의 손을 빌려 차술(借述)한 것이라 하였다. 이에 따라 문과 중시에 급제한 이대엽의 표사(表詞)가 이재영(李再榮)의 손에서 나온 것이라 하여, 인조반정 뒤에 소급해 과방(科榜: 과거 급제자를 기록한 방목)에서 이대엽의 이름이 삭제되기도 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동부승지로서 서궁(西宮)의 폐출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또 신잡(申磼)의 아들 신경희(申景禧)와 서양갑(徐羊甲) 등이 일으킨 칠서지옥(七庶之獄)에 연루되자, 아우 이익엽과 더불어 이는 반대파의 모함에서 비롯되었다고 상소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대북정권이 몰락하자 아버지 이첨과 동생 이원엽·이홍엽·이익엽이 모두 죽임을 당했으나, 이대엽은 인조의 특명으로 절도에 위리안치되었다. 이는 이대엽이 반정공신인 신경진(申景禛) 형제와 처남 매부 사이로서, 인조가 당초 이대엽을 용서해 주겠다고 신경진에게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에 양사(兩司)가 합계해 국왕이 사사로운 정으로 이대엽을 살려준다고 공박하였다. 양사가 이 일로 거듭 연계해 청하자 인조가 정형(正刑: 형을 바르게 집행함)하라고 명을 내렸다. 이 소식을 옥중에서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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