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에 대한 비판
package.lua 80번째 줄에서 Lua 오류: module 'Module:Message box/localize' not found. 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제13대 대통령 노태우에 대한 비판과 논란을 서술한 문서이다.
논란과 의혹[편집]
부정 선거 의혹[편집]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그가 당선된 이유는 야권의 분열과 중대사고 등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그가 당선된 것이 부정 선거라는 의혹이 존재한다.
실제로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는 선거 직후 이 선거가 부정선거이며 무효임을 규정, 투쟁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1]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 역시 "부정선거를 저지르지 않았으면 내가 이겼을 것"임을 주장하였고, 투쟁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2]
지역감정 의혹[편집]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통일민주당을 비롯한 민주세력들은 지역감정을 "군부와 민주정의당의 정치공작이며 지역감정을 악용하여 노태우 후보를 당선시키려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영남출신의 군인중심인 하나회가 조장했다는 설도 있다. 또한 1990년 1월, 김영삼 김종필과의 3당 합당에 의한 민주자유당 창당으로 호남을 정치적으로 철저하게 고립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3]
보안사 민간인 사찰사건과 도청 의혹[편집]
보안사 민간인 사찰 사건(윤석양 이병 양심선언 사건)은 1990년 보안사령부(현재의 기무사)에 근무하던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의 사찰 대상 민간인 목록이 담긴 디스크를 들고 탈영해 그 목록을 공개한 사건을 말한다. 이 목록에는 정계와 노동계, 종교계 등에 대한 사찰 기록이 담겨 있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노태우 정권 퇴진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4] 항의에 굴복한 노태우는 즉시 보안사를 기무사로 이름을 바꾸게 했고 그 역할이 축소되었다.
전임자들은 기피인물이나 정적을 괴롭힐 때 주로 중앙정보부나 보안사령부를 이용하였으나 노태우는 주로 국세청을 이용했다. 정보기관 이용은 국내외 인권문제를 야기시켰고 국민의 반감을 사기 때문이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망언[편집]
1995년 10월, 노태우는 "문화대혁명때 수천만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보면 광주사태 저것은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망언으로 국민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노태우씨는 "중국은 이런 피를 흘린 사건이 있었는데도 몇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처벌하지 않았으며 등소평이 중심이 돼 그 원로들을 다 대접하고 활용했다"고 말해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다.[5][6][7] 그 직후 국민들의 비난여론이 일어나자 노태우는 "처음에는 그런 얘기를 한 기억이 나지않았으나 나중에 녹음 테이프를 들어보니 그런 얘기를 했더라면서 어떻게 그런 얘기가 나올 수 있었는지 스스로도 놀랐다"는 발언으로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광주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처지가 못된다"며 답변을 유보했다.[8] 당시 노태우의 망언에 정치권까지 듫끓게 되었고 집권당인 민자당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망언에 대해 해명을 촉구하는 형식으로 수습하자고 대응했으나 국민들의 공분은 가라앉지 않았다.[9] 노태우는 10월 13일, "자신의 발언으로 5.18 피해자 유족에게 상처를 준 점을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자신의 광주 망언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10]
한편 노태우는 2011년 5.18에 대해 다시 "5.18은 “유언비어가 진범"이라며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 시민들 씨를 말리러 왔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들은 시민들이 무기고를 습격하게 된 것이라는 게 주요 내용"이라고 강변했다.[11]
물태우[편집]
노태우의 별명은 '물[12]' 또는 '물태우'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역대 대통령들을 말할 때 우스개 삼아 '이, 윤, 박, 최, 돌, 물, 깡'이라 부른다 한다.[12]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대통령까지는 성을 그대로 부르지만 그 다음부터는 별명이다. 즉 '전두환 = 돌', '노태우 = 물', '김영삼 = 깡'이다.[12]
노태우의 대표적 별명이며 흔히 수동적이고 미온적인 처신과 카리스마 없는 행동으로 물에 물탄 듯 하다는 비꼼의 의미로 물태우라는 별명을 듣고 있지만 실제 물태우의 기원은 재임 당시 물난리가 잦고 수재민 발생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노태우 자신도 재임시절 자신을 물태우라고 칭하는 것에 대해 좋은 반응을 보였다.[13]
3당 합당[편집]
상술한 3당 합당은 대한민국 정치를 정상과는 유리될 수 있게 만들었다.
1992년 대선 자금[편집]
노태우는 8월 9일 발간한 자신의 회고록에서 199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김영삼 후보에게 3천억 원을 지원했던 사실을 밝혔다. [14] 이러한 일로 인하여, 김영삼 대통령 측근과 노태우 대통령 측근들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참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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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黨(당)합당 선언의 충격 1990.1.22 동아일보
- ↑ 정치査察(사찰) 內幕(내막)을벗긴다 (1) 미행…도청…수색…이렇게 당했다. 1990.10.06 동아일보
- ↑ 노태우씨, 광주사태는 중국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라 망언 1995년 10월 10일 mbc뉴스데스크
- ↑ 노태우 발언 파문 1995.10.11 mbc
- ↑ 盧(노)씨「光州(광주)」발언 각계 규탄, 1995년 10월 12일 동아일보
- ↑ 노태우,자신의 광주사태 발언 공식 사과 mbc
- ↑ 盧泰愚(노태우)씨「光州(광주)」발언 커지는 파문…정치권“술렁” "경솔한 언동1995.10.12 동아일보
- ↑ 盧泰愚(노태우)씨「광주발언」공식사과 기자회견"5.18피해자가족에 상처줘 미안" 국민회의등 與野(여야) 수용태세 盧泰愚(노태우) 동아일보 1995.10.13 ]
- ↑ 노태우 망언 "광주학살 진범은 유언비어" 뷰스앤 뉴스
- ↑ 12.0 12.1 12.2 송국건, 《도대체 청와대에선 무슨 일이》 (네모북스, 2007) 274페이지
- ↑ 盧大統領(노대통령)"나를「물泰愚(태우)」라 부르는데 매우 좋은 별명이다" 1989년 6월 9일 동아일보
- ↑ "92년 YS 대선자금 3000억원 건넸다" 2011년 8월 9일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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