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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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이응표는 1593년에 가리포첨사(전남 완도군 완도읍)에 부임하여 1597년(음력)7월 16일 칠천량해전에서 전라우수사 이억기의 선단에 포진해 있었으나 패한 후 살아서 돌아온다. 그 후 명량해전에 참전을 했다. 명량해전후 그는 경상우수사에 임명을 받지만 칠천량해전에서 주장(主將)인 전라우수사 이억기를 구원하지 않았다는 책임이 매우 중하여 파직당했다.[1] 그러나 훗날 다시 관직을 제수받는다.
기타[편집]
<선조(30년)10월 12일-조선왕조실록>
그렇다면 이응표(李應彪)는 주사(舟師)로 나가 있을 때 특이한 공로가 없었는데 무슨 일로 경상 우수사(慶尙右水使)에 제수했는가? 파면시키고 다른 사람으로 제수해야 한다. 주사로 나가 있던 사람들은 모두 패배한 장수들이니 이들은 주장(主將)을 구원하지 않은 책임을 져야 한다."
<선조 35년(1602) 7월 18일>
이응표(李應彪)는 바로 이억기(李億祺) 관하의 장수입니다. 억기는 일찍이 응표와 생사를 같이하기로 언약했었는데, 적과 접전하다가 선척(船隻)이 분궤(奔潰)될 때를 당해 억기는 오직 응표만을 믿고서 닻을 내린 채 기다리며 군관(軍官)을 시켜 큰 소리로 빨리 오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응표는 기(旗)를 눕히고 서둘러 노를 저어 도망침으로써 억기를 패하여 죽게 하였습니다.
각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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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왕조실록,선조 30년 10월12일